버스 타고 고고

백제와 고구려의 유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차산

mioki 2017. 6. 12. 17:17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근처 골목골목에 숨겨진 맛집이 굉장히 많은 듯 하다.

아차산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가니 곤드레밥이나 도토리묵부터

삼계탕, 피자집까지 다양한 메뉴의 음식점이 여기저기 포진해 있어서

가볍게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먹으면 딱 좋을 듯!!


아차산역이 아닌 광나루역 1번 출구에서 아차산 유적지로 출발했다.

1번출구에서 농협 방면으로 걸어가다,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서울광장초등학교를 찾아간 다음, 주말텃밭 방향을 물어 골목을 통과해 들어가면

아차산 둘레길 초입에는 아차산생태공원이 조성되어

다양한 꽃구경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차산 둘레길을 즐길 수 있는 5가지 코스~

처음엔 완만하게 느껴지지만

도성을 지키던 성곽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결코 만만치 않은 경사의 구간이 많다.


아차산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점을 잘 보기로 유명했던 홍계관이란 사람이 있었다.

명종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홍계관을 불러 궤짝에 몇마리의 쥐가 들어 있는지 맞춰보라고 했다.

홍계관이 세마리(?)라 답해, 확인해 보니 안에는 두마리 밖에 없어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거짓 점쟁이라 판단해 사형을 명한다.

그런데, 잠시 후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령했으나

홍계관은 이미 죽었고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도읍이 한강 유역에 있을 때 우뚝 솟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일찍부터 이 아차산에 흙을 깎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아 올려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는 백제인의 노력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 남쪽에 있는 풍납동 토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지로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하던 곳이기도 하다.

아단성(阿旦城), 아차성(蛾嵯城), 장하성, 광장성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여

 백제, 신라, 고구려가 한강을 중심으로 공방전을 장기간에 걸쳐 벌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475년 백제의 개로왕(재위 455∼475)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한 3만여 명의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이 산성 밑에서 고구려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또 우리에겐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로 알려진 온달장군이 이곳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또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재위 559∼590)의 사위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竹嶺)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아차산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 초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산성은 고구려가 잠시 차지했다가 신라 수중에 들어가 신라와 고구려의 한강유역 쟁탈전 때 싸움터가 된 삼국시대의 중요한 요새였다.





광나루역에서 올라가는 아차산둘레길에서 바라본 아차산성 잔재~

한강에서 바라본 것이 성곽의 안쪽이고, 그 반대편이 성곽의 바깥쪽이다.

백제에서 고구려의 침입을 대비해 만든 성곽이니, 당연히 한강 이남쪽 방향이 성곽의 안쪽임!


성곽은 소봉의 정상부를 돌아가며 쌓은 석축부와 그 안쪽의 소토부로 구분된다.

석축부는 직경 15m 정도의 원형으로 쌓여 있으며 현재 3단 정도 드러나 있다고 한다.

석축은 납작한 화강암 판석을 엇갈려 쌓았고, 석축 시설의 안쪽 윗부분에는 깬돌을 쌓은 첨탑 같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정형성이 없고 석축 유구가 일부 훼손된 것으로 보아 후대에 다른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유추된다고.



아차산 둘레길에는 4개의 보루가 있다고 한다.

각 토루에서 발견된 유물은 고구려와 백제의 문물을 짐작케 한다.

그 이유인즉,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측조해 사용하던 것을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아차산성을 빼앗긴 후 고구려의 땅으로 지배받았기 때문이다.

아차산 둘레길에는 참호보다는 훨씬 큰 토루라는 것이 4개 있다. 삼국 전쟁이 한창일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3개의 토루에선 검은 간토기의 동이류가 가장 많았고, 황갈색이나 홍갈색의 연질토기도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4번째 토루에선 평저호(平底壺, 밑이 납작한 항아리)가 가장 많았으며,

광구호(廣口壺, 아가리가 넓은 동이형 토기)나 접시, 뚜껑류도 많이 발견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