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고고

7월 연꽃 축제가 열리는 봉선사

mioki 2017. 6. 5. 11:12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의정부역에서 내려 버스타고 가면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남양주시 진전읍!

광릉수목원과 광릉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봉선사가 나온다.

광릉에서 봉선사까지 가는 도로는 초록이 우거져 차에서 내려 걷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위치한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다.

고려 광종 때 운학사라는 이름으로 중창되었는데,

세종 때에 7개 불교 종파를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할 때 혁파되었다.

 하지만, 근처에 세조의 능인 광릉이 조성되면서

 정희왕후가 예종 1년인 1469년에 세조의 위엄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크게 중창하고 봉선사로 고쳐 불렀고 원찰로 되었다.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봉선사대종을 같은 해에 주조되었다고 한다.






명종 5년인 1550년에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 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다. 따라서,

당시 승려들의 교학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과거 시험인 승과가 봉선사에서 열렸고

서산대사나 사명대사와 같은 고승도 이곳에서 승과에 응시하였다고 전해진다.


89칸 규모의 커다란 사찰이었던 봉선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이듬해인 이듬해인 1593년에 주지 낭혜(朗慧)가 중창하였다.

 1636(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주지 계민(戒敏)이 중창하였으며,

1749(영조 25)에는 재점(再霑)이 중수하였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사찰 전체가 전소되어 현재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중건한 것이라고.


봉선사는 수원 융건릉의 용주사, 서울 선정릉의 봉은사와 함께 조선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이다.

봉선사에 남아있는 문화재로는 조선초기 범종으로 보물 397호로 지정된 봉선사 동종을 비롯해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의 보운당부도(報雲堂浮屠) 등이 있다.


봉선사 동종의 특징은 종의 고리부분을 용의 머리가 서로 역방향으로 향하는 일체쌍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중심 정상부에는 용의 발톱으로 여의보주를 소중히 받든 모습이다.

상대와 당좌는 생략되어 있고, 사방의 연곽대에는 섬세한 당초문이 장식되어 있다.


 

봉선사의 색다른 점은 대웅전이라 부르는 법당에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로 큰법당이라 쓴 현판을 단 것이다.

 법당 사방 벽에는 한극 법화경과 한문 법화경을 동판에 새겨놓았다.

또한 일반 사찰과 달리 금강문이나 천왕문 등의 출입문 대신 조선시대 양반가옥이나 재실처럼 솟을대문을 사용하고 있다.


정희왕후가 광릉의 원찰로 봉선사를 중창할 때 심었다고 전해지는 500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 한국전쟁을 겪으며 꿋꿋하게 살아 남은 나무다.


 그리고 큰법당 앞 마당에는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이 있으며,

1981년에는 운허의 부도탑을 세웠다. 이 밖에도 사찰로 들어서는 길목에

이광수와 친척이었던 봉선사의 주지가 춘원 이광수를 기념하여 세웠다는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절 옆에 있는 광릉은 사적 제197호이며,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가 주변 숲에 서식한다.

 매년 7, 봉선사 초입에 조성된 연못에서부터 봉선사 경내에서 열리는

<봉선사연꽃축제>는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한번 다녀올 만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