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고고

비운의 사도세자, 효자아들 정조..경모궁

mioki 2017. 4. 30. 16:44

역사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언급되는 조선의 인물로는 

 숙종과 장희빈, 영조와 정조...

그리고 비운의 세자인 사도세자가 있다.


자주 지나가던 길에 있던 옛날 대문(?)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사적237호 경모궁(宮)이라고 한다.


경모궁은 혜화동 서울대학교병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경모궁 그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사도세자를 떠 올려보자.




사도세자는 조선 21대 영조의 둘째아들로 왕위를 이어받은 세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세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영조도 자식을 먼저 떠난 보낸 것이 안스러워, 

영조 40년(1764년) 봄, 사도세자 3년 상을 치그로 난뒤 도성의 북부 순화방에

사도세자의 사당을 건축하였다.(세자라는 직위로 죽었기 때문에 종묘에 신주를 모실 수 없었음)

그해 여름(6월)에 동부 숭교방, 즉 창경궁 호화문 동쪽에 있는 함춘원에 옮겨 짓고 수은묘라 이름을 붙였다. 


정조는 즉위한 직후 부친 사도세자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사당도 다시 지었다. 

 정조 1년 월에 공사를 마무리하고 직접 어필로 경모궁()의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경모궁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로 알려진 헌경왕후를 기리는 사당이었다.  


겸모궁은 기본구조는 종묘와 비슷하지만 종묘보다는 낮은 수준의 사당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창덕궁과 가까운 곳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는 사당을 지어 

마음이 헛헛할 때나 부모님이 그리울 때 자주 찾았다고 하니, 

정조의 효심이 정말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이후 고종 13년 경모궁 망묘루를 증축하였다.

경모궁이 경모전이 되었다가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며

몇몇 선조의 즉위를 추숭(또는 추존)하며, 장헌세자라 하였던 것을 장종(후에 장조)라 하고

경모궁도 높여 경모전이라 부르다, 사도세자의 신위가 종묘로 옮겨지면서

경모궁은 1925년 헐리게 되고, 관리도 허술하게 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 주차장 위쪽에 문과 터만 남아 있다.

최근 복원 사업을 시작해 공사가 한창인데..

그 전에는 그저 문이 그대로 있다고 했음..


정조는 경모궁을 찾는데 형식과 비용을 낮추기 위해

월근문을 만들어, 말을 타지 않고 시시때때로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